불안을 담은 캐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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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변화는 산 사람의 특권이자 삶의 증명이다.

《불안을 담은 캐리어》는 발꿈치 뒤로 불안을 끌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희정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캐리어를 끌고 떠나는 사람이자 변화하는 사람인 희정은 끊임없이 여행한다. 멈추지 않고 여행하며, 변화하고, 삶의 길을 만들어 나간다. 발꿈치 뒤로 불안을 끌면서도 계속 나아간다. 정지하지 않는 희정에게 도착점은 늘 새로운 시작점이 된다.

♟불안을 직면한 희정의 도피 이야기♟
♟과감하고 솔직한 직설적 표현의 소설♟

복숭아 살에 와인색이 물드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아는가?
어떤 단단한 과육도 알코올 앞에선 무장 해제되는 게 사람이랑 같았다.

와인 잔에 알코올 향이 살짝 가실 때가 되면 와인엔 복숭아 향과 맛이 더해지고 과육엔 단맛보단 포도 향이 더해져 마지막 잔엔 꼭 과일을 넣었다.

미술 전공자. 순수 미술 전공. 서양화를 배웠는데 나는 스페인에서 벼루와 먹을 꺼내 들었다.

📕이레이다 작가, 까미노 여행 스케치(드로잉 에세이)의 다음 책
“한국에서도 그랬고 지금 여기 마드리드에서도 네게 가장 많은 건 ‘시간’이었으니까”
🔸이레이다 장편소설, 『불안을 담은 캐리어』

📝 출판사 서평

by 김지현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좌절할 때가 많다. 남들 보다 늦은 출발점, 텅 빈 통장, 별 도움 안되는 아르바이트 이력, 아무리 봐도 특출할 것 없는 시덥잖은 내 인생 같은 것들. 그럴 때마다 나는 여행을 떠났다. 심지어 책 한권을 낼 정도로 꽤 많이 다녔다. 그런 좌절이 해방으로 바뀌고, 불안이 확신으로 변하길 바라면서. 우습게도 나를 둘러싼 것으로부터 벗어난다면, 그런 모든 것들로 부터 달아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행 갈 짐을 싸며, 캐리어에 그 좌절과 불안을 그대로 담은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런 의미에서 희정은, 그리고 이 이야기는 마치 나와 당신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각기 다른 이유이지만 우리 모두 그런 삶의 불안함을 품고 사니까. 책을 덮을 때는 당신의 캐리어가 텅 비었기를 바래 본다.

여행은 삶이다 by 이지수

<불안을 담은 캐리어>(이하 캐리어)를 쓴 이레이다 작가는, 여행 에세이 <까미노 여행 스케치>(이하 까미노)의 저자이기도 하다. <까미노>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난 여성 예술가 ‘나’의 이야기이고, <캐리어>는 스페인과 런던으로 떠난 여성 예술가 ‘희정’의 이야기이니, 전작을 읽은 독자라면 <까미노>의 나와 <캐리어>의 희정을 비교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자의 성별을 적은 것에 유감을 표한다. 그러나 이 두 작품에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구태여 살려 적었다.) 하지만 에세이의 몸을 입은 <까미노>와 소설의 몸을 입은 <캐리어>는 비교될 수 있을지언정, 완벽하게 포개질 수는 없다. 에세이가 사실을 전달하는 데 기울어진 글이라면, 소설은 진실을 전달하는 데 기울어진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캐리어>를 읽는 동안, 독자는 허구적 글쓰기라는 형식 속에 숨겨진 진실의 방문을 받게 된다.

<캐리어>에는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 될 명사들이 몇 가지 등장한다. 희정, 연석, 한국, 스페인, 런던 같은 고유명사와, 캐리어, 아버지, 어머니, 결혼, 꿈, 그림, 장례식장 같은 일반명사가 그것이다. 이 명사들은 실뜨기 놀이의 꼭짓점처럼 서로 연결되어 맞닿았다 풀어지기를 반복한다. 어느 꼭짓점끼리 맞닿았느냐에 따라, 실뜨기의 모양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이 되기도 하고 ‘희정의 런던 여행’이 되기도 한다. 독자가 해야 할 일은, 명사를 이어가며 실뜨기 모양에 담겨 있는 진실을 읽어내는 것이다.

여기 하나의 실뜨기 모양이 있다. 모양의 이름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희정이 캐리어를 끌고 가다’이다. 시작점에 있는 명사는 캐리어다. 캐리어란 무엇인가. 재질이나 크기, 모양에 상관없이, 캐리어의 본질은 이동을 위한 도구라는 데 있다. 길에서 캐리어를 끄는 사람을 보면 이름 모를 타향을 무심코 상상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동은 기존 장소와의 결별로 시작해서, 새로운 장소와의 만남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이동에는 출발점과 도착점, 결별과 만남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이동은 심리적인 이동을 함께 가져오기 때문에, 이동하는 사람은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캐리어에 연결된 두 갈래 실을 따라가다 보면, 한쪽에는 희정이, 한쪽에는 희정의 아버지가 있다. 희정과 희정의 아버지는 모두 ‘캐리어를 끌고 떠나는 사람’이자, 변화를 불러오는 사람이다. 희정의 아버지는 이혼을 선택하면서 희정의 어머니와 희정의 삶을 바꿔놓았고, 희정은 집을 떠나면서 그녀 자신과 어머니, 연석의 삶을 바꿔놓았다. 다만 둘의 여로는 대조적이다.

희정의 아버지는 희정을 두고 집을 나가면서 소설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고인으로 다시 등장하는데, 그 사이에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희정도, 독자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완전한 종착점을 맞이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제 그는 어디로 떠나지도, 변화하지도 않은 채 과거의 어느 순간에 정지해 있을 것이다. 그는 더 나은 사람이 되거나, 희정에게 사과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반면 희정은 끊임없이 여행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이 소설의 첫 장부터 끝장까지 그녀가 계속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눈에 띄는 것은 장소의 이동이다. 희정은 한국의 집에서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인 민박으로, 스페인에서 장례식장으로, 장례식장에서 임시 숙소로, 임시 숙소에서 연석의 집으로, 연석의 집에서 런던으로 이동한다. 소설의 끝에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캐리어를 정리하면서 또 다른 이동을 암시한다.

장소에는 사람이 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아갈 때마다 희정은 새로운 이름과 만나기도 하고, 과거의 이름과 헤어지기도 한다. 장소의 이동은 인간관계의 이동을 가져온다. 그런데 모든 이름이 겹치는 지점이 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이다. 장례식장을 떠나면서, 희정은 어머니와 민정과 멀어지고 연석과 더 가까워진다. 아버지의 부고가 아니었다면 스페인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멈췄을지 모를 여행은, 장례식장을 기점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녀는 연석과 결혼을 하고 다시 런던으로 떠난다. 어머니와 민정 옆에 머물렀을지 모를 인연은 연석과 연석의 부모님, 런던에서 만난 사람들로 범위를 넓혀 나간다.

인간관계의 변화, 그러니까 외부의 변화는 대개 내면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다. 변화를 불러오는 사람은 스스로 변화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희정의 성장담으로 귀결된다.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희정은 듣는 사람이었다. 희정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 -어머니와 민정-은 본인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희정의 이해를 구하면서도, 정작 희정의 어려움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대화의 방향이 한쪽으로 쏠리고 화자와 청자가 고정되면, 청자는 화자를 이해해야 하는 의무를 일방적으로 짊어지게 된다. 그럴 때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이 된다. 희정의 경우, 그 무게는 ‘착하다’라는 말로 정당화되었다.

‘왜?’라고 질문할 기회가 희정에게는 필요했다. ‘왜 착하게 살아야 하지?’ ‘왜 참아야 하지?’ 때로 질문을 던지려면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희정은 스페인으로 떠나야 했다. 듣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희정을 관찰하는 유일한 인물인 연석이 그녀에게 스페인 여행을 제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스페인에서 희정은 가족에 대해, 사랑에 대해, 그리고 그림에 대해 다시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그녀는 생각하면서 아프고, 앓으면서 생각한다. 아버지의 부고를 받았을 때, 그녀는 변화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희정은 마침내 청자의 자리에서 벗어난다. 그녀는 자신의 힘듦을 민정에게, 연석에게, 연석의 부모님에게 털어놓으면서 ‘말하는 사람’이 된다. 관계의 전복을 받아들인 사람은 가까워지고,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은 멀어진다.

희정은 런던으로 떠나 ‘나의 꿈’과 ‘나의 가정’에 대해 말한다. 연석에게, 런던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와 독자에게 꿈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을지, 가정이 꿈을 잡아먹어 버리지는 않을지를 질문한다. 그녀는 이제 개인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개인의 삶에 대해 질문하고, 개인의 삶에 대해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나’로 사는 것은 어렵고 정답이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정은 -희정 자신이 말했듯이- 클론이 아닌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 살기를 선택한다.

희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 여행하며, 변화하며, 삶의 길을 새롭게 만들어 나간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변화할 수 없기에, 변화는 산 사람의 특권이자 삶의 증명이다. 그래서 희정에게 여행은 삶이다. 그녀는 늘 고민하면서도 늘 살아가고자 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람은 발꿈치 뒤로 불안을 끌면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 그 길은 언제나 오르막일 필요는 없다. 여행자에게 하나의 길은, 얼마나 험하든 간에 다른 길을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다. 정지하지 않는 사람에게 도착점은 새로운 시작점이 된다. 희정의 여행이 그럴 것이다.

📑 목차

  1. 한국
  2. 스페인 마드리드 올라올라 한인 민박
  3. 아빠의 장례식
  4. 영국 런던 올어바웃런던 게스트하우스

🔎 북카드

“선생님은 도덕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중학교 도덕시간, 선생님께 죽은 지혜가 했던 질문.

그리고 그녀가 희정에게 남긴 말.

“착하지 마”

착함을 강요받고 자란 주인공 ‘희정’은 관계를 맺음에 익숙하지 않다. 가장 가까운 엄마와의 관계에서조차 ‘듣는 사람’의 역할로, 그 습관은 친구 관계까지 이어진다.

질문하지 못하는 자에서 질문하는 자가 되기까지의 사건과 선택.

갑작스러운 스페인으로 도피, 연락 끊긴 아버지의 죽은, 또다시 영국으로 이동…

희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 여행하며, 변화하며, 삶의 질을 새롭게 만들어 나간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변화할 수 없기에 변화는 산 사람의 특권이자 삶의 증명이다. 그래서 희정에게 여행은 삶이다.

📍 정치하지 않는 사람에게 도착점은 새로운 시작점이 된다.

희정의 여행이 그럴 것이다.

[ 불안을 담은 캐리어 ]

글, 그림 이레이다

불안한 당신에게,
수많은 ‘희정’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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